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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콘솔

인텔리비전의 새 게임기인 아미코에 대해

by 사과향잉크 2018. 10. 25.


나무로 만든 몸체, 키패드가 있는 컨트롤러. 올해 39세


인텔리비전이라고 아시나요? 한국과는 연이 없는 게임기라 게임기보다는 AVGN의 영상으로 유명할 것 같습니다.

그가 9년 전에 올린 영상을 보면 좋은 말은 없지만 당시에는 300만대 이상 팔린 게임기입니다. 꽤 대단하죠.

아타리 2600 시대다보니 거의 40년 전 게임기인데요. 게임기보다는 컨트롤러의 특이한 모습에 눈이 갑니다.

숫자가 써있는 키패드와 디스크. 당시에는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인텔리비전이 새로 나온다고 합니다. 왜 지금와서 새 게임기를 내는 걸까요?


레트로 콘솔들(출처)


예전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오래된 게임기를 레트로 콘솔이라고 합니다.

레트로 콘솔 시장은 이전부터 쭉 존재했는데요. 호환 게임기는 물론 게임도 조금씩 나왔습니다. 한국에도 관련 사이트가 있죠.

그런데 이 시장이 최근에 갑자기 커지게 됐습니다. 바로 닌텐도 때문이죠.


닌텐도는 2016년, 1980년대 자사 게임기인 패밀리 컴퓨터의 서양판인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복각해서 내놓습니다. NES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판매를 시작하자 순식간에 품절되어 중고가격이 몇 배나 뛰었죠.

이후 패밀리 컴퓨터도 복각하고, 2017년에는 슈퍼 패미컴(서양에선 슈퍼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SNES)을 복각합니다.

당연히 엄청나게 팔렸고, 지금도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올해 6월에는 현세대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4와 엑스박스 원보다도 많이 팔렸다니 말 다했죠.


닌텐도의 NES 클래식과 SNES 클래식


닌텐도의 성공은 다른 회사들의 눈길을 끌었고 세가는 메가 드라이브를,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복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소니는 연말, 세가는 내년에 출시할 예정으로 한국에서는 재믹스 미니도 나온다고 하죠.

여기에 그치지 않고 레트로 콘솔용 게임을 다시 만들겠다는 사람마저 나타났습니다. 

탱글우드 등 현세대 게임기와 레트로 콘솔에 게임을 같이 내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아예 레트로 콘솔에 맞는 게임을 만들겠다니요.


거기다 옛날 게임들의 후속작까지도 불러들였죠. 예를 하나 들자면 보글보글이라는 게임을 아실 겁니다. 

원래 이름은 버블보블인데 이를 포함해 여러 레트로 게임의 권리를 구매한 리퀴드 미디어는 닌텐도 때문에 레트로 콘솔 시장이 커졌다면서 후속작의 가능성도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세가의 메가드라이브 미니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


인텔리비전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나봅니다. 5월부터 새 인텔리비전이 나온다고 얘기했으니 말이죠.

사실 인텔리비전에 대한 권리는 당시 인텔리비전을 판 마텔사에서 인텔리비전 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갔습니다.

사장은 알라딘, 어스웜 짐 2 게임의 음악을 작곡한 토미 탈라리코죠. 그래미 상에 게임 음악을 포함시키기도 한 대단한 사람입니다.


어찌되었든 그때 이후로 아무 소식도 없다가 새 게임기라며 발표한 게 인텔리비전 아미코입니다.

2020년 10월 10일, 149~179달러 사이의 가격으로 나온다고 하는군요. 약 20만원입니다.




전체적인 모습은 40년전과 크게 다릅니다. 하지만 컨트롤러만큼은 당시와 정말 비슷해보이네요.

시대가 바뀌어 키패드 대신 컬러 터치스크린을 탑재했고 발전된 시대에 맞춰 무선 컨트롤러가 되었습니다. 사진처럼 게임기에 꽂아두면 자동으로 충전도 되죠.

진동, 마이크, 스피커, 가속도계, 자이로스코프, 터치스크린, 무선 등 살펴보면 달라진 점은 많지만 전체적인 모양, 양쪽의 버튼, 디스크만은 정말 똑같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컨트롤러 대신 쓸 수 있다고 합니다.



게임은 어떨까요? 인텔리비전의 게임은 물론, 아타리와 아이매직의 게임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이 게임들이 그대로 나오는 게 아니라 리마스터되서 나온다는 겁니다.

40년 전 게임을 현대에 맞는 그래픽으로 바꾸고, 음질도 향상시키며, 멀티플레이에 추가 레벨까지 생긴다네요.

현대 그래픽으로 바뀐 퐁과 팩맨,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대체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거기다 세가지 클래식 게임 모음에 더해 알 타입, 10야드 파이트, 로드 러너, 문 패트롤 등도 나온다고 하는군요.


아타리 2600판 팩맨(출처)


아타리 2600판 퐁(출처). 향상된 그래픽과 음질의 퐁이 상상되시는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사진을 보시고 이미 짐작하신 분도 있겠지만, 그저 옛날 게임 좀 돌릴 게임기를 과거에 비해 저렇게 크게 바꿀 필요가 있을까요?

당시 게임에 마이크나 터치 스크린이 무슨 필요 있겠습니까? 오히려 게임기 가격만 올리는 쓸데없는 짓이 아닐까요?


인텔리비전 아미코는 그저 과거 게임만을 위해 만들어진 기기가 아닙니다. 새로운 게임도 나오죠.

21세기형 2D 칩과 아키텍처를 탑재해 2D 게임에 한해서는 개발이나 플레이가 엑스박스 원, 플레이스테이션 4 등보다도 나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몇몇 개발자한테 비용을 지불해 아미코용 게임을 만들 예정이라고 합니다. 어떤 게임이 나올지 궁금하네요.


어딜봐도 팩을 꽂을 구멍은 없는 만큼 거의 모든 게임은 다운로드 방식이라고 합니다.

가끔 실제 패키지로도 나온다는데 현재 PC 게임 패키지가 그렇듯 코드가 담겨있을 것 같습니다.

가격은 모든 게임이 4.99~7.99달러이며 DLC나 소액결제는 없습니다.

또 중요한 건 모든 게임이 전연령, 10세 이상 이용가만 나온다는 겁니다. 폭력적인 게임은 안 나온다네요.

현세대 게임기 중 가장 가족 친화적인 닌텐도 스위치에 나오는 다크 소울이나 울펜슈타인 같은 게임은 못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오니까 감이 잡힙니다. 이 게임기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것도 많이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요.

아니, 더 정확히는 어린 아이가 있는 부모가 대상입니다.

오늘날같은 시대에는 부모가 바쁘다보니 아이에게 신경쓰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보니 아이가 부모가 모르는 사이에 폭력적인 게임을 할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아예 그런 게임이 없는 게임기가 있다면? 정말 안심하고 아이에게 게임기를 사줄 수 있겠죠? 심지어 게임 가격도 싸고 게임기도 그렇게 비싸지 않다면?


북미 게임 심의 등급 기관인 ESRB의 회장이 인텔리비전 아미코를 보고 생각한 게 바로 이겁니다.

그는 평균 게이머 연령이 34세로 높아진 시대에는 어린아이에게 적합하지 않을 게임이 많아 부모가 아이에 맞는 게임을 찾기 힘들다, 아미코라면 어린 아이를 가진 바쁜 가정에게 매력 있는 제품일 거라고 얘기했거든요.


인텔리비전 사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아미코에 대해 부모가 아이들이 사달라고 해서 사는 게임기가 아니라 부모들이 사고 싶어서 사는 게임기를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요즘 가정용 게임기로 나오는 게임들은 하드코어 게이머만을 생각하고 만들기 때문에 같이 게임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지금 가장 잘 나가는 가정용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4의 대표 게임을 보면 혼자서 하는 게임이며 컨트롤도 복잡합니다. 키가 많아 복잡하다는 그당시 인텔리비전 컨트롤러만큼이나 쓰는 키가 많죠.


그래서 게임을 잘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기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합니다.

터치스크린이라면 현대인은 스마트폰으로 친숙하니까 다루기 쉽죠.

다른 게임기들이 컨트롤러를 하나씩 줄 때 두 개가 들어있는데다 스마트폰으로 컨트롤러를 대신할 수 있으니 여러명이서 게임하기 위해 준비할 게 없습니다.


가족을 대상으로 크게 성공한 닌텐도 위


가족, 쉬운 조작법 등 닌텐도 위가 떠오릅니다. 과연 이 제품이 성공할까요?

사장은 이 게임기가 틈새시장을 노린다고 했습니다.

위에 말했다시피 어린아이가 있으며 어린아이에게 부적합한 게임을 피하려는 부모가 대상이죠.

꽤 괜찮게 들리는데요. 그런데 인텔리비전은 40년전 물건입니다. 지금 아이를 기르는 부모가 추억을 떠올리기에는 너무 오래됐죠. 그렇다면 추억은 포기하고 아이들만을 보고 사야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스마트폰으로도 게임을 쉽게 접하는 시대에 아이들이 아미코의 게임으로 만족할까요?

40년 전 게임을 새로 치장하고 몇 개 레벨을 추가한다고 괜찮아지는 걸까요?

인텔리비전 엔터테인먼트가 아미코 게임을 즐길 거라 생각하는 연령대는 대체 몇 세쯤일지 궁금합니다.

아미코에 맞춰 만든다는 게임들 역시 어떨지 궁금하구요.


인텔리비전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습니다. 아미코에 참여한 인물들이 나와있습니다.

악마성, 콘트라, 철권, 팩맨, 드래곤볼 Z 등 100가지가 넘는 프랜차이즈에 관여한 프로듀서.

닌텐도 위, DS, 슈퍼 닌텐도, 게임큐브, 닌텐도 64 등 닌텐도 기기를 출시한 전 닌텐도 마케팅 부사장.

닌텐도 위, DS, 포켓몬 등 전 닌텐도 홍보 담당자.

마리오 vs 동키콩을 개발한 닌텐도 소프트웨어 테크놀로지 코퍼레이션의 공동 창립자이자 문 패트롤, 스파르탄 X, 10야드 파이트 등에 참여한 스콧 츠무라 등 굉장하네요.


스콧 츠무라가 개발에 참여한 스파르탄 X


참여한 사람들을 보다보니까 아미코가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전에 닌텐도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많고 닌텐도 위는 가족에 초점을 맞춘 게임기로 성공했으니까요.

닌텐도의 최신 콘솔인 스위치가 닌텐도의 과거에 비해 가족보다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 만큼 가족을 대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닌텐도 스위치는 컨트롤러가 두 개라는 점이나 마리오 파티 같은 게임을 보면 가족 친화적이지만 위에서 말한대로 다크 소울, 울펜슈타인 같은 게임도 나오니까요.

폭력적인 게임은 내지 않을 거라고 했던 20여년 전(당시 거부했던 게임은 스위치로 올해 출시)이나 닌텐도 위 때에 비하면 좀 더 하드코어 게이머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하지만 닌텐도가 괜히 노선을 그렇게 바꾼게 아닙니다./p>

최근까지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부탁해서 게임기를 사고는 했지만 스마트폰의 도래 이후로 아이는 물론 대부분의 성인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게 되면서 게임기의 수요가 떨어졌거든요.

그에 따라 경제력이 있으면서 좀 더 높은 품질의 게임을 즐기고 싶은 게이머를 노리게 된 겁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인텔리비전 엔터테인먼트에서 안 했을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원하는 게임기가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게임기를 만든다는 거겠죠. 부모가 사고 싶은, 아이에게 사주고 싶은 게임기... 별로 재밌어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서 아이들이 부모가 원치 않는 컨텐츠를 접하는 게 걱정되는 부모, 더 어린 아이를 가진 부모에게는 ESRB 회장 말대로 매력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미코는 이탈리어로 친구라는 뜻입니다. 인텔리비전 아미코가 정말로 친구와 즐기기 좋은 게임기이자 삶의 친구가 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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