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은 최근 개발자를 우대한다며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출시했습니다.
에픽의 게임 판매 플랫폼으로 스팀 등이 게임 판매액의 30%를 수수료로 떼는 것과 다르게 12%만 떼죠.
발표 후에 많은 개발자들이 환호했는데, 적어도 지금까지는 개발자를 우대하고 소비자를 천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무료 게임 맛에 취해, 별 이유 없이 스팀 광신자라며 에픽을 비난하는 게이머를 비난하는 게이머도 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왜 이런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을까요.
1. 개발자의, 개발자에 의한, 개발자를 위한 스토어
에픽은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발표하면서 개발자가 에픽으로 오면 얻는 이득을 설명했습니다.
더 적은 수수료, 홍보 지원, 개발 지원 등 여러가지를 설명했는데요.
정작 소비자가 얻는 이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에픽은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고 평가를 남길 수 없습니다.
개발자들은 게임의 나쁜 평가가 보기 싫어서 이 점을 격하게 환영했다고 합니다.
소비자들은 어떨까요? 게임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클라우드 저장, 컨트롤러 지원, VR 지원 등 기능이 부족해서 불편하기도 합니다.
에픽이 말한 소비자의 이득은 '수수료가 적어 개발자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입니다.
업계 전체에 이득이 된다면서요. 정말 대단한 이득이군요.
수수료가 낮은 만큼 스팀에 있던 때보다 게임이 더 저렴하다고 했지만 실제 그런 게임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2. 스팀 출시 예정 게임을 돈으로 매수
에픽 독점 논란 이전에도 특정 스토어로만 나오는 게임들이 있었습니다.
니드 포 스피드, 배틀필드, 피파 등이 나오는 EA의 오리진.
어쌔신 크리드, 레인보우 식스, 파 크라이, 고스트 리콘 등이 나오는 유비소프트의 유플레이.
엘더스크롤, 폴아웃, 둠, 울펜슈타인 등이 나오는 베데스다의 베데스다넷.
포르자, 헤일로, 기어스 오브 워 등이 나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스토어.
그런데 위에 나온 곳들의 공통점은 자사가 개발한 게임만 독점으로 낸다는 겁니다.
하지만 에픽은 몇 개를 제외하고는 전부 타사가 만든 게임입니다. 그럼 대체 이 게임은 어떻게 가져오는 걸까요?
이전까지는 수수료 때문으로 알려졌지만 그것만으로는 독점을 하기에 부족하겠죠.
스팀에 내면 더 많이 팔려서 수수료를 내도 더 많이 벌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에픽은 개발사들에게 돈을 쥐어줍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판매량도 보장해줍니다.
게임이 아무리 안 팔려도 에픽이 돈을 대신 줍니다.
인기가 없어서, 혹은 게임의 질이 좋지 않아서 판매량이 걱정되는 인디 게임들은 환영할 일이죠.
여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렇게 에픽으로 간 게임은 대부분 스팀에서 팔고 있거나 판다고 했고, 광고까지 한 게임이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메트로 엑소더스는 긴 기간 스팀에서 예약판매를 하고 패키지에 스팀 키까지 담고서는 출시 약 2주를 남기고 1년 기간 독점으로 바꿨죠. 긴 기간 기다린 게이머를 농락한 겁니다.
쉔무 3, 멕워리어 5, 우블릿 등 수많은 게임들이 스팀에서 판다고 알리거나 스팀에서 광고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갑작스럽게 에픽 독점으로 바꾸었죠. 개발비를 받거나 판매량을 보장받는 등 혜택을 받고 말입니다.
특히 쉔무 3나 피닉스 포인트, 우블릿 같은 경우는 후원자들의 돈을 받고는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게이머들은 새로운 플랫폼에 피로를 느끼기도 했지만, 환영하기도 했습니다.
스팀에 대항하기 위해 나온 GOG 등 다른 곳과는 달리, 끝없는 돈을 바탕으로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에픽은 오직 개발자만 신경 쓰는 태도, 소비자가 기다리던 게임의 강탈 등으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3. 에픽과 개발사들의 태도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에픽과 개발사들의 태도입니다.
에픽의 경우 CEO인 팀 스위니가 SNS에서 수많은 말을 쏟아내었습니다.
특히 게임 독점으로 개발자를 모으면 소비자는 알아서 따라온다면서 소비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죠.
밸브가 직접 개발한 하프라이프, 도타 2도 밸브 독점인데 자기들이 뭐가 문제냐는 말도 유명합니다.
에픽이 만든 언리얼 토너먼트와 포트나이트가 에픽 독점이라고 따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에픽이 돈으로 회사들을 매수하자 개발자들은 소비자를 하찮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는 게임을 판매해야하니 소비자들의 말을 들었지만, 안 팔려도 에픽이 돈을 주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죠.
메트로 엑소더스 개발사는 런처 하나 까는 게 뭐가 어렵냐며 앞으로 PC판을 안 낼거라는 협박을 했습니다.
스팀에서 예약 판매를 하다가 갑자기 독점으로 바꾸고는 적반하장이 따로 없습니다.
이후 직원 하나가 분노에 휩싸여 적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미지를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피닉스 포인트는 후원자들이 다 환불해도 에픽이 돈 줘서 이득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후원자보다 에픽이 준 돈이 더 많으니까요. 에픽에 먼저 접촉한 것도 피닉스 포인트 측이었습니다.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게임에 흔쾌히 돈을 낸 후원자를 뭘로 보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게임 개발비를 후원했던 후원자는 자신에게 온 이메일로 에픽이 독점 조건으로 개발사에게 225만 달러(약 26억원)를 주었을 거라 추측했습니다.
피닉스 포인트는 약 23억원을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쉔무 3의 경우, 스팀에서 판매한다는 말을 바꾸고는 환불까지 거부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돈도 주지 않는다니 사기가 따로 없군요.
이전에 에픽 독점을 택한 피닉스 포인트는 환불은 바로 해주었는데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에픽의 끝없는 돈주머니 덕분인지 결국 환불은 해주었습니다.
우블릿의 경우, 에픽 반대파는 이상한 사람들이며 독점 같은 건 사소한 일이고, 이런 데 신경쓸 시간에 더 좋은데 신경쓰라며 훈계까지 합니다.
게임을 후원한 후원자들에게도 환불해도 이득이라며 막말을 하고는, 이후 소비자들의 공격을 받고는 이렇게 심할줄 몰랐다고 했죠.
우블릿 역시 에픽이 판매량을 보장해서 후원자들이 환불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에픽이 이런 게임들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후원할 정도로 관심이 많으니 독점을 하면 이득이 되리라는 판단이죠.
결국 후원자들 덕분에 게임이 대기업의 관심을 받은 건데 개발사들은 그 순간 더 이상 너희는 필요 없다며 내치는 겁니다.
이제 게이머들은 게임을 후원하면서 개발사가 돌변하여 자신들을 무시할지 걱정해야되는 것이죠.
반면, 소비자를 진솔하게 대한다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명확하게 출시 플랫폼을 알리지 않았고, 자신들의 재정 상황을 진솔하게 전달한 언타이틀드 구스 게임은 에픽 독점을 알리고도 큰 소란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발사들은 자기들이 일을 저지르고도 소비자를 일깨워야한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5. 빈약한 기능
나온지 반년이 되었지만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아직도 부족한 기능이 많습니다.
특히 충격적인 건 장바구니조차 없어서 게임을 하나씩 사야한다는 겁니다.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찬찬히 살펴볼 수도 없고, 한 번에 살 수도 없습니다.
에픽 독점을 선언한 많은 개발사는 에픽에게 돈을 받으면서 대응 매뉴얼도 같이 받았는지 똑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
2000년대 초 스팀과 비교하면서 당시 초기였던 스팀도 기능이 없었는데 에픽스토어가 뭐가 문제냐고 말입니다.
16년 전에 나온 플랫폼과 지금 막 나온 플랫폼의 기능이 비슷한 게 자랑일까요?
그동안의 발전에 따라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사용자 평가는 소비자들의 질타에 따라 추가하기로 했지만 아직도 없습니다.
클라우드 저장은 예정이 한참 지나 최근에야 추가되었는데 지원되는 게임이 2개 뿐입니다.
게임 출시 전에 미리 받아놓는 프리로드도 지원하지 않습니다.
컨트롤러 지원도 미비하며, VR은 아예 지원하지 않아서 스팀을 이용해야합니다.
독점 게임을 즐기기 위해 다른 게임 런처를 써야하다니 재밌네요.
6. 게이머를 비난하는 언론
에픽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언론이 에픽과 게이머를 대하는 태도는 극과 극입니다.
US 게이머 등 수많은 웹진들은 에픽을 칭찬하고 게이머를 비난하기에 바쁩니다.
이를 위해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기사를 쓰죠.
우블릿의 경우, 위에 나왔듯 개발자가 소비자를 하찮게 여겼지만 이후 많은 기사에는 피해자로만 묘사되어있습니다.
회사가 한 말은 빠져있고, 소비자들이 공격한 부분만 나와있지요.
개발자가 쓴 '이틀간 울었다'라는 말만 강조하면서 겨우 독점 때문에 이러냐며 게이머를 야만적이라고 비판합니다.
기자들이 선민의식으로 이러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 기사가 나옵니다.
기사를 믿고 무작정 게이머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죠. 게이머로서는 반감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과하게 대응하는 게이머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게이머와 개발사의 말은 전부 전해야겠죠. 한쪽만 전하는 건 불순하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7. 대주주인 중국 텐센트와의 연관성
에픽 게임즈의 대주주인 중국 기업 텐센트 때문에 개인정보가 중국에 새어나갈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얘기가 나와서 에픽 CEO인 팀 스위니가 해명까지 했죠.
팀 스위니는 자신이 에픽의 최대주주인 이상 그런 일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텐센트의 지분은 48.4%, 팀 스위니는 50% 이상입니다.
그리고 개인정보 전송 조항도 다른 지역에서 미국 본사에 보내기 때문에 필요하다며 중국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후 스팀 개인정보를 사용자 몰래 취득하는 문제가 발생해 의혹은 더 커졌습니다.
텐센트의 자회사 중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서비스하는 라이엇도 있습니다.
자회사인 라이엇이 문제가 없다면, 에픽이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을 신경쓰는 게이머도 분명 있습니다.
***
찬찬히 살펴보면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개발자 친화적이라는 부분을 빼면 어떠한 점도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에픽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남을 거라는 의견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합니다.
에픽은 돈이 많고, 많은 게임들이 독점으로 바뀌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게임이 있어도 소비자가 없으면 결국 망할 거라고 보는 사람도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지금까지 여러 사건이 일어나도, 결국 게임만 좋으면 상황을 수용하곤 했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게임들을 기대하지 않았거나, 구매할 생각도 없었던 사람이라면 에픽의 행동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에픽이 무료 게임을 계속 제공하자 에픽 런처는 여기 저기 깔리고 있고, 에픽 옹호자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료 게임을 주는 게 미안해서 게임을 사줬다는 사람도 나오고 있으니 굉장히 효과적인 정책이죠.
취미 분야에서는 '취향은 존중하라'는 말이 유명합니다.
'취향을 가지고 논쟁을 하려 하지 마세요.'라는 유시민 씨의 말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아 싸움이 자주 일어납니다.
자기 취향은 존중해야하지만, 남의 취향은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라서 게이머들은 서로 많이 싸워왔을뿐, 단합해서 뭘 이룬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게이머가 한 마음이 되어 에픽에 맞선다면 정말 에픽이 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게임 뿐만이 아니라 많은 일들이 그렇습니다. 단합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쉬운 사람이 숙이는 법입니다.
게임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게임의 대체재가 없다' 혹은 '재미만 있으면 돼'하는 반응이 나오곤 합니다.
에픽에게서 돈을 받아 아쉬울 것 없는 개발자, 그 게임을 하고 싶은 게이머 중 누가 먼저 숙이게 될까요?
# 2019. 8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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